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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떨쳐낼 수 없는 전쟁이라는 마약이 빚는 참상

evol 2010. 12. 28. 22:42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된다." - Chris Hedges

 

영화는 이라크 침공 전쟁에 참가한 미군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 폭탄 제거반) 팀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게 출발한다.

폭탄 제거반의 캡틴인 맷 톰슨(가이 피어스, Guy Pearce)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폭사하고 마는 것이다.

가이 피어스가 주인공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죽다니, 플래쉬 백에 나오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맷 톰슨의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윌리엄 제임스 하사(제레미 레너, Jeremy Renner)는 부하인 샌본(안소니 마키, Anthony Mackie)과

엘드리지(브라이언 개러티, Brian Geraghty)로부터 위험하고 충동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도무지 하늘 일의 위험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감 따위가 전혀 없는 전쟁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전장의 모습은 황폐함과 긴장감이 뒤섞인 모래바람이 부는 스산한 공간이다.

군인들은 대단한 임무를 수행하는 영웅도 아니고 그저 직업군인으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과도 같다.

그렇지만 전장에서 피할 수 없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감은 그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피폐하게 한다.

모래바람에 기계가 서서히 고장 나고 녹이 슬어 마모되듯이 그들 또한 그렇게 서서히 피곤함에 잠식되고 지쳐가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물론 반전의 내용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표한다거나

이라크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면을 들추거나 참혹한 전쟁의 아픔 등에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 영화는 철저히 서스펜스와 액션을 조율해서 관객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르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모습에서도 전장에서의 임무를 즐기는 듯한,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러한 결과물이 오히려 영화의 반전적인 성격을 강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장르영화가 단순하게 자기 장르에 충실한 화법과 내용을 가지고 도달하는 지점에서 얻게 되는 영화적 성과가 아닐까?

 

영화는 이라크에서 미군(미국)이 가지고 있는 공포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결국 미군은 이라크에 대해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침공했으며 여전히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폭탄 세례를 받아 흔적도 없이 산화하고, 자기의 아들이 생각나게끔 하는 이라크 소년의 죽음으로

오인한 사건 이후에 벌이는 제임스의 좌충우돌 실패,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희생양인지 모를 사내의 온몸에 휘두른 폭탄을

결국에는 제거하는 데에 실패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라크에 대한 미군(미국)의 해석력 또는 분별력이라는 게 매우

협소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군(미국)은 결국 이라크에서 실패했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했고, 알려진 대로 아랍권에서의 석유에 대한 점유권과 정치적,

군사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으로부터 출발한 탐욕의 전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영화는 그러한 결과에 대한 비판에 총구를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에게 '도대체 저런 망할 놈의 상황을 왜 계속 끌어가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데에 다다르게 한다.

 

언제 자기의 발아래에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어느 때에 자기의 침대 위로 날아들지 모르는 포탄의 위협으로부터 받는 공포감.

그런 것을 느낄 때면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막상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지루해지고 무기력하게 된다.

시리얼을 하나 사오라는 아내의 말에 대형 마트 한 코너를 꽉 채운 시리얼의 거대한 벽 앞에서 답답함과 부조화를 느끼는 제임스.

그는 다시금 황량하고 쓸쓸하며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운 전장으로 돌아간다.

그의 걸음걸이는 아드레날린을 마음껏 분비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지만, 그는 예전에 그랬듯이 또한 스스로 마음을

가두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상처(Hurt)가 아물고 그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심장(Heart)에 박히는 참혹한 폭발물을 영영 가둘 수는 없을 것이다.

 

 

 

The Hurt Locker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 본문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막에서 펼쳐지는 원거리 사격전 장면은 보는 사람도 숨이 턱턱 막히고 비지땀이 흐르게 한다.

전투기가 날고, 미사일의 포격이 난무하며, 무차별한 전투 씬과는 달리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 놓인 그 공간의 무게감이 대단하다.

영화 전반과는 다소 동떨어진 에피소드인데 모래사막에서의 그 장면을 보면서, 정말 전쟁은 할 게 못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까지 수상하게 된 캐서린 비글로우.

전 남편인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경쟁을 벌인 터라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뭐 서로 영화적인 동료라고는 하지만, 글쎄 과연 "나는 왕이다!"라고 외쳤던 제임스 카메론의 속이 좋진 않았을 것 같은데?

 

*** 윌리엄 제임스의 부인 역에 어디서 많이 본 배우가 등장했다.

오! 케이트!!

미국 드라마 로스트(Lost) 시리즈의 에반젤린 릴리(Evangeline Lilly)였다.

괜히 반가웠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