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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콜: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내려면 침착할 것

evol 2013. 6. 20. 21:28

 

 

여기저기에서 쉴 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수많은 벌이 윙윙대는 것처럼 들려서인지 벌집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미국 LA 경찰국 산하 911 콜 센터이다. 응급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구조 요청을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그곳의 주요 임무지만, 술만 마시면 전화를 걸어오는 취객과 단순하게 길을 묻는 사람, 집안에 박쥐가 들어왔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 등 그 사연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제각각이다. 그런 중에도 사고를 알리는 전화는 끊이지 않으니 센터 요원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범죄 현장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게 되는 요원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오로지 전화에 의지해서 위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침착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어느 날 밤, 베테랑 콜 센터 요원인 조던(할리 베리, Halle Berry)은 혼자 있는 집에 무단침입한 괴한과 맞닥뜨린 소녀 레아(에비 루이스 톰슨, Evie Louise Thompson)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다. 차분하게 레아에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기지를 발휘한 조던은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자 상황 판단을 잘못해서 곧바로 전화를 거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그 소녀는 범인에게 발각되어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 사건으로 죄책감에 빠진 조던은 심리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신입 요원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는다. 그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 그때처럼 소녀의 울음 섞인 다급한 목소리가 조던 앞 요원의 전화를 울린다. 두려움에 떠는 소녀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런 소녀를 제어하지 못하는 요원을 보다 못한 조던은 결국 대신 상황석에 앉는다. 괴한의 습격을 받고 자동차 트렁크에 갇혔다고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소녀 케이시(아비게일 브레스린, Abigail Breslin)를 진정시키는 조던은 처음엔 자신 역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당황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집중한다.

 

차의 트렁크에 갇혀 범죄자에게 납치되는 소녀의 절박함과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 요원의 난감함이 영화에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스릴러 영화다. '911 콜 센터'라는 곳에 관한 공간 설정과 범인의 자동차를 뒤쫓는 상황 설정이 제법 긴박하게 이어지며 진행되는 중반까지 그 긴장감의 힘은 유지되지만, 상황을 타개할 것처럼 보이는 조력자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사실성의 힘이 떨어지고, 짜임새에 허점이 점점 노출되는 구성의 허술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녀가 처한 상황의 안타까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마련한 조력자들의 등장은 하나같이 어이없는 대처로 마무리되고,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력의 추적은 어떻게 그렇게 무능한가 싶다. 물론 주인공인 조던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설정이라고 해도 이런 스릴러 장르 영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 설정의 사실성이 아닌가. 또한, 범인의 캐릭터가 단순한 정신병적인 집착증이라는 점 외에 정서적인 힘을 갖지 못한 탓에 상대적으로 양자대립의 구도에서 조던에 비해 약하게 다가온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약점에도 영화는 단선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는 전개 덕에 몰입감이 꽤 크다. 더운 여름날에 극장에서 즐길만한 시원한 느낌의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결말 부분에 이르러 그나마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도 못한다. 콜 센터 여성 요원과 기진맥진한 소녀가 합작해낸 그 장면은 통쾌함은커녕 어이없는 헛웃음을 유발하고 만다. 어느 정도 재미있는 전개 과정을, 사실성을 담보하지 못한 인물과 상황의 설정으로 반감시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스릴러 장르 영화다.

 

 

 

감독: 브래드 앤더슨(Brad Anderson)

 

* 요즘 같은 세상에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냉큼 경찰에 신고하는 게 최선이다. 단,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911(119)'이 아니라 '112'라는 점! 괜히 '119'에 전화 걸어서 내가 누구입네, 직책이 뭐네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