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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소중함, 그 지당한 진리

evol 2013. 6. 15. 00:13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4시, 큰딸 스테파니부터 로버트, 숀, 그리고 막내 카트리나까지 4남매는 쉽사리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아침을 먹고 씻는다. 이윽고 엄마 카렌(셜리 헨더슨, Shirley Henderson)은 두 딸을 옆집에 맡기고 아들 둘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기차로 갈아탄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로 갈아타는 먼 길 끝에 도착한 곳은 바로 아이들의 아빠이자 카렌의 남편인 이안(존 심, John Simm)이 있는 교도소다.

 

카렌은 그렇게 남편이 갇혀 있는 교도소를 주말마다 아이들을 번갈아 데리고 다니고 있다. 낮에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카렌은 넷씩이나 되는 아이들을 챙기면서 일하느라 피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텐데도,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거나 슬픔에 젖어 울지도 않으며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간다. 남편의 친구인 에디(대런 타이, Darren Tighe)를 가끔 만나 가벼운 키스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로 놀러 가긴 해도 그 이상의 선을 넘진 않는다.

 

 

 

영화는 카렌과 아이들, 이안이 집과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무덤덤한 시각으로 담아낸다. 면회 시간이 거듭되면서 계절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서 아이들은 자라나며, 그 속에서 무심하게 보이는 세상의 풍광 또한 변해간다. 아이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나면 허탈해지는 이안은 잠깐 동안 만나는 가족과의 면회 시간 후에 밀려오는 허탈함을 침묵의 눈빛으로 드러내고, 사소한 투정도 제대로 하지 않는 카렌은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하고 혼자 눕는 침대에서 밀려오는 쓸쓸함과 고단함을 몇 방울의 눈물로 덜어낸다.

 

등장인물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도 그렇지만 영화 안에는 5년의 세월이 변화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순간 분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자라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실제로 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감독은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로 세월의 변화가 등장인물에 깃드는 모습, 그것도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정말 어린 아이들이 영화 속에서 세월이 변함에 따라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묘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야말로 매일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몰두한다. 이안이 형기를 마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카렌이 얕은 원망을 쏟아내며 남편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염없는 기다림, 그리고 아이들이면 일으킬만한 사소한 말썽과 문제 속에서도 어김없이 자라나는 성장의 변화를 영화는 자잘한 감정을 배제한 채 차분하게 담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격정과 갈등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게 일상 아니겠나!

 

화장기 없는 얼굴로 소박한 심성을 연기하는 카렌 역의 셜리 헨더슨의 모습과 마치 실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듯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네 남매의 모습은 이 영화가 극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한다.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는 인물의 관계를 최소화하고, 매일의 시간이 쌓이면서 계절이 바뀌며, 그 계절의 더께가 쌓여서 긴 세월의 흐름이 되는, 켜켜이 층으로 쌓여가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혹은 이어지는 사람들의 내면과 외형을 담아낸 독특한 느낌의 영화다.

 

 

 

그런 시간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건 바로 네 명의 아이들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아이들의 모습이 서로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대단한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네 명의 아이들은 실제로 친남매라고 한다.

 

매일, 하루하루, 그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살고, 1년 12달을 살아간다. 즐거운 시간이 이어질 때에는 그 시간이 멈췄으면 싶어도 흘러가고, 고통의 나날이 연속된다고 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원해도 여전히 시간의 속도는 일정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국 우리는 한 뭉텅이의 세월을 지나왔음을 확인하곤 한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 없이 매일 다음으로 미루며 살아온 게으른 인생은 한치의 진전도 없이 변화 없는 고인 삶을 계속 살게 될 것이고, 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며 열심히 산 사람에게는 등 뒤의 과거가 좀 더 밝은 미래를 안아왔음을 보게 될 테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게 느껴지던 하루하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날을 위해 견디고 버텼기에 그들은 결국 다시금 하나가 되었다.

 

 

 

감독: 마이클 윈터버텀(Michael Winterbottom)

 

* 아이들에게 자그마치 5년의 세월이란 엄청난 변화의 시간이다. 영화 초반에 봤던 아이들의 모습이 후반에는 너무나 훌쩍 자라서,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