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의 성격이 다르듯이 가치관도 저마다 다르다. 그 다름은 타고난 성격에서 비롯할 수도 있고, 자라면서 형성될 수도 있다. 혹은 세상의 그 무엇엔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사고나 사건에 의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남자가 있으니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한 첫사랑에 관한 기억이다. 그에게 그 기억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유일무이한 행복이고, 그 행복을 더는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이제는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의 무거운 가치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나세르 알리 칸(마티유 아말릭, Mathieu Amalric),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젊은 시절에 만나서 첫눈에 반했고 서로 사랑했지만, 연인 이레인(골쉬프테 파라하니, Golshifteh Farahani)의 아버지가 극구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슬프게 헤어진 애절한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는 이별 뒤로 그 첫사랑의 아픔을 바이올린을 통해 표현하며 살아가는데, 그렇기에 그에게는 첫사랑의 기억과 음악이 곧 살아가는 이유인 셈이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음!!)
그렇지만 그에게도 현실의 삶은 있기에 지금의 아내인 파린기세(마리아 데 메데이로스, Maria de Medeiros)를 만나 결혼했고, 딸과 아들도 낳았다. 그는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지만, 가정과 가족에 거의 관심이 없다. 그에게 관심은 오로지 첫사랑의 기억이 담긴 바이올린, 음악뿐이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아무리 마음을 열게 하려고 애써도 무관심의 날들이 이어지자 점점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화가 난 아내는 순간 화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바이올린은 다시는 연주할 수 없도록 부서지고 만다.
너무나도 놀라고 상심한 그는 차마 화도 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죽기로 마음먹는다. 영화의 내용은 자못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지만,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오가는 등의 다양하고 예쁜 표현 기법과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장면의 구성으로 오히려 유쾌한 동화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를테면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죽을지를 상상하는 장면을 보면, '기찻길에 누울까? 아니야, 아플 거야. 높은 데서 뛰어내릴까? 약을 먹으면? 총으로 쏘면? 그것도 아플 거야. ' 등의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고스란히 화면에 옮겨지면서, 도대체 이 사람이 정말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의 슬픔이 끝까지 가볍게 그려지진 않는다. 비록 그가 선택한 죽음의 길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침대에 누워서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어이없는 방법이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그가 죽기까지의 일주일을 담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불편한 생각이 시작된다. 나세르의 상심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아니지만, 눈물을 쏟으며 생각을 달리하라고 애원하는 아내와 밤이면 침대에서 아버지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그의 모습에 은근히 부아가 돋는다.
영화의 원제 뜻은 '자두를 곁들인 닭고기' 음식이다. 그건 바로 나세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고, 영화에 많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아내가 나세르에게 심심치 않게 해줬을 음식이다. 그런 음식을 제목으로 붙여 놓고, 영화는 아내인 파린기세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죽기 직전까지 나세르에게 해다 바쳤던 음식, 그 음식을 통해서라도 남편의 마음을 바꾸고 싶었던 간절한 염원을 가진 아내. 그런데 나세르는 오직 자기 삶만 생각하며 아내와 아이들의 삶은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그것도 죽음의 길을 택하다니!
영화는 일주일 동안 그의 유년 시절부터의 삶을 동화 같은 느낌으로 그려낸다. 그 과정에는 그가 처음에는 기계적인 기교만을 좇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다가 첫사랑의 기억을 담아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영상미가 마치 꿈결 속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영화이긴 하지만, 나세르의 이기적인 모습이 영화의 아름다움만을 보기엔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적어도 나세르와 이레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한 예술가의 예술혼에 영향을 주었고, 예술가에게 그 예술혼이라는 게 곧 자신의 목숨과도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영화에서도 표현에 홀대받는 아내와 아이들 모습이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의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의 무대는 이란의 테헤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세르가 죽음까지 불사하며 간직하고자 했던 연인의 이름도 'Irane'인 것을 보면, 감독이자 원작자인 마르잔 사트라피(Marjane Satrapi)가 자신의 조국인 이란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다. 그래선지 영화에서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느낌도 묻어난다.
일생 동안 첫사랑의 사랑만을 운명이라 여기며 끌어안고 산 나세르, 그에게 사랑은 곧 단 하나이자 영원함의 의미였다. 그의 사랑이 비록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애절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는 있어도, 어쩌면 그의 사랑은 자신의 주변을 돌보는 노력 없이 혼자만의 삶, 혼자만의 사랑으로 마감한 이기적이고 편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사랑의 속성은 또 그렇게 자기와 자기 연인 이외에 아무것도,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마력이 있는 거니까! 그런 사랑에 빠지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불쌍하고 안타깝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사랑은, 삶은 그렇게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Vincent Paronnaud)
* 영화 결말에서 이레인의 모습, 그 외면과 눈물이 이해가 된다. 나세르는 그런 이레인이기에 그토록 떼어내지 못하고 사랑한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세르의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해서 나세르가 야속했지만, 그런 사랑을 한 나세르가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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