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늙은 데다가 병에 걸려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그때로부터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삶을 살려고 할까? 그건 아마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태도와 크게 무관하지 않은 양상을 보일 것 같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허튼 것들에 휘둘리며 산 사람, 자기에게 정말 소중한 것에 소홀히 하며 관계를 맺은 사람을 하찮게 대하며 산 사람, 게으름과 후회의 반복 속에서 생각만 가득한 채 아무 변화도 없이 산 사람, 감정 표현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무심 무감하게 산 사람 등은 아마도 제 몸 아픈 것만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드러누워서 무덤에 누워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여기, 의사조차 손을 놓으며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으면서 편안히 살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들으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낙심할까 싶어서 귓속말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메리언(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이 있다. 메리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중한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며 기쁨을 느낀다. 비록 몸은 늙고 병들어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지만, 자기감정에 충실하며 그 누구 못지않게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음!)
한편 그런 메리언의 곁에는 술자리에서 어울리는 몇 친구를 제외하고는 남들과 쉽게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괴팍한 성격의 남편 아서(테렌스 스탬프, Terence Stamp)가 있다. 비록 금연구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하나뿐인 아들 제임스(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Christopher Eccleston))에게도 냉담하게 대하는 그지만, 아내에게만큼은 세상 그 누구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애처가다. 오로지 아내 메리언을 제외하고 그가 그나마 마음을 여는 사람은 손녀 제니퍼(올라 힐, Orla Hill) 정도다.
영화는 그렇게 죽음을 앞둔 메리언과 아서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홀로 남은 아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픈데도 합창 연습하느라고 기운을 더 빼는 메리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아서는 아침 일찍 문병 와서 기운차리라고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정작 그토록 바라던 합창 대회 본선을 앞두고 메리언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을 바라보며 불러준 노래 'True Colors'가 메리언의 마지막 노래하는 모습이 된 것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 아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황소처럼 울부짖는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더해 자식과의 갈등까지 깊어지자 홀로 남은 아서는 뒤늦게나마 아내가 어울리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영화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관객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진행된다. 너무나 뻔한 과정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매우 상투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이다. 영화에는 영화 자체의 이야기가 주는 무게보다,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족을 떠올리며 영화의 이야기를 옮겨 오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이 얹혀진다. 나의 부모를 생각하거나 혹은 나도 곧 저들처럼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나는 저쯤의 삶의 지점에서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영화에는 메리언과 아서의 사랑하는 모습이 가장 가운데에 담겨 있긴 하지만 적잖이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다. 도대체 아서는 왜 아들과 그렇게 사이가 벌어졌을까? 그건 바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어리석음과 게으름이다. 서로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 뭐하나, 상대에게 자기의 마음이 어떠한지,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 어떠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질 리 만무하다. 하물며 요즘 어떤 과자 광고에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라고 카피를 바꾸지 않았는가! 서운함이 쌓이고, 오해를 키우면서도 쉽사리 그런 태도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기중심적 태도와 실천에 대한 게으름, 의지박약이다. 그런 면에서 아서는 앞으로 죽은 아내를 위한 노래를 넘어 살아 있는 아들과 손녀를 위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는 앞서 말한 이야기의 뻔한 전개가 다소 단조롭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다. 메리언과 아서 역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는 설정이나 시도 없이 덤덤하고 차분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선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분위기가 주는 깊은 울림이 그렇다. 메리언이 죽은 상황에서 영화는 슬픈 음악을 배경에 깔지도 않고, 그 누구의 우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관객이 전해 받는 유일한 표현은 모습도 보이지 않는 아서의 황소 같은 서글픈 울음소리뿐이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말 슬프게 우는 건 다른 사람 앞이 아니라 혼자서 있을 때인 것을.
노인들과 어울리며 합창단을 이끄는 엘리자베스(젬마 아터튼, Gemma Arterton)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서로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되기도 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의 서열이 갈리고, 단지 친구의 의미가 나이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하루라도 빨리 해소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주된 주제에 '치유'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것도 유명인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걸로 수많은 사람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을까? 참된 치유는 그런 과정이 아니라, 영화 속의 아서처럼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서로 짐을 나눠 들고, 기쁨을 나누는 길에 있지 않을까? 잘못과 후회를 반복하는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그렇게 먼저 자기의 다리를 움직여 그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실천에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에는 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왜 사람 관계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답이 있다.
Song for Marion
감독: 폴 앤드루 윌리엄스(Paul Andrew Williams)
*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슬프게 들릴 줄이야! 영화 전반에 걸쳐 감정의 결이 무덤덤하게 표현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눈가를 촉촉하게 하면서도 눅눅하지 않은 느낌을 안겨주는 영화다.
**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이 참 좋다. 물론 원곡 가수가 부르는 것만큼 매끄럽거나 매혹적이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힘도 덜 하고 기교도 덜한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주는 느낌이 참 은은하면서도 촉촉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병상에 누운 메리언을 위해 합창단원들이 창문 너머로 부르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메리언이 아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부르던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트루 컬러스'를 비롯하여 영화의 후반 아내를 대신해서 무대에 선 아서가 죽은 아내를 향해서 지그시 눈을 감고 부르던 빌리 조엘(Billy Joel)의 'Lullaby - Goodnight My Angel'까지 한결같이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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