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프랑스의 멋진 수영장에서 이름을 따온 인도의 소년 파이(수라즈 샤르마, Suraj Sharma)는 아버지(아딜 후세인, Adil Hussain)와 어머니(타부, Tabu) 그리고 형 라비와 함께 인도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경영하던 동물원이 재정난에 맞닥뜨리게 되자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캐나다에서 팔기 위해 실은 동물들과 파이의 가족이 배를 타고 캐나다로 향하던 어느 날 밤, 지구 상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지나던 배는 거센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마침내 배가 침몰하게 되면서 파이는 가족들을 잃은 채로 구명보트에 겨우 몸을 싣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파이가 탄 구명보트에는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를 비롯한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갈산 호랑이도 함께 타게 되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동물들의 사이에서는 결국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호랑이가 모두를 죽이고 먹어 치우면서 결국 구명보트 안에는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이 남게 된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그 보트에서 둘은 자그마치 227일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기약 없는 표류를 하게 된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얀 마텔(Yann Marte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3D 영상의 기술력을 예술적인 영상미로 구현한 신비롭고 황홀한 영상과 더불어 삶에 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모험담이자 감동적인 판타지 드라마이다. 끝을 알 수 없이 넓디넓은 태평양의 한가운데에 놓인 호랑이와 소년의 이야기에는 많은 은유가 담겨 있다. 바다라는 공간은 곧 삶을 의미하고, 파이를 홀로 남기고 모든 것을 앗아간 폭풍우는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좌절과 절망의 상황을 뜻하며,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하이에나 등의 동물들과 여체의 모습과 닮은 식인섬의 의미들은 어쩌면 이 영화의 말미에 언급되는 것으로 유추해볼 때 사람들의 모습과 거기에 비유된 구명보트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파이가 조난을 당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영화의 이야기는 그가 겪는 기이한 모험담이라는 하나의 줄기와 함께, 인간의 삶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종교적 신앙심과 이성적 판단 혹은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 등에 관한 제법 묵직한 메시지가 얽혀 있다. 한없이 넓은 바다라는 공간에 버려진 삶 같은 절망의 인생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좌절의 소용돌이와 절망의 폭풍 속에서도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 어떤 신적 존재보다 한 인간의 삶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결국, 어른이 된 파이(이르판 칸, Irrfan Khan)가 그가 겪은 놀라운 경험담을 통해 신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방문한 작가(라프 스팰, Rafe Spall)와 나누는 영화 마무리 부분의 이야기에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심오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고난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거나 죄의식을 갖게 될 때, 그것을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 즉 종교적 존재에 의지해서 피하거나 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파이가 죽음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의지와 함께 이성적이자 동시에 본능적인(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측면) 판단과 결단이지, 신이 전적으로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라는 거다.
하나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도, 자못 오싹하고 심오한 이야기까지 파고들어도, 모두 좋을 이 영화의 이야기는 영화 안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입체 영상으로 표현된 바다와 하늘과 물고기들과 동물들의 경이로운 영상뿐만이 아니고, 가벼운 모험담으로 읽어도 또한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은 철학적 이야기로 읽어도 둘 다 충분히 만족하게 하는 영화의 구성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정말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영상, 마치 환각 상태에서 경험할 것만 같은 화려한 색채와 명암의 조화, 생과 사를 오가는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숱한 그 광경들에 배어있는 이야기의 결이 참으로 사색적으로 다가온다.
파이가 들여다보려 했던 호랑이의 눈에서 과연 파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건 아마도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가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일엽편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극복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에 스스로 강한 자아를 투영했을 호랑이의 모습이다. 신의 존재를 그토록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스스로 삶을 강렬히 열망한 자신의 의지였을 테고, 파이가 겪어야 했던 상실의 슬픔과 생존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끔찍한 고통 끝에, 뒤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에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결국 자신의 삶을 그때까지 지탱하게 했던 '어떤 존재'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파이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삶의 의미, '기적을 행하는 신의 위대함'보다 '생존의 기적을 일궈낸 인간의 의지'가 더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Life of Pi
감독: 이안(李安)
* 이안 감독은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에서 이미 환각 상태와 유사한 영상을 선보이더니 3D 영상의 기술력을 이렇게 예술적인 표현력으로 구사해냈다. 아이맥스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 극장에서 제공하는 입체 영화를 보기 위해 쓰는 안경, 요금도 비싸게 받는 만큼 관리도 잘해야 하지 않을까? 표면이 더러운 건 닦으면 된다고 해도, 흠집이 너무 많이 나서 선명한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짜증이 몹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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