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kⓘnⓞ。

가족시네마: 우리 사회가 반드시 나눠 들고 풀어야 할 과제들

evol 2012. 12. 5. 20:17

 

 

영화 '가족시네마'는 네 편의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다. 블랙코미디 장르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와 다큐멘터리 형식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편은 그 소재와 내용은 다르지만, 주제 면에서는 포괄적으로 봤을 때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가족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한마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 가족이 떠안고 있고, 겪게 될만한 안타깝고 불편한 현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옴니버스 영화의 장점은 한 번에 여러 편의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과 각각의 영화 상영 시간이 30분 안팎에 이르다 보니 그다지 길지 않은 호흡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로 묶인 네 개의 영화는 전체적인 흐름과 커다란 상관관계는 없지만, 네 명의 감독이 각자의 시선과 방식으로 공통의 주제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네 편의 영화를 대하는 관객에게 각각의 영화가 이질적으로 이어진다는 느낌보다는 한지붕 아래에 사는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첫 번째 영화, '순환선'은 곧 늦둥이의 출산을 앞둔 만삭의 아내와 중학생 딸을 둔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남자(정인기)는 얼마 전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차마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아침이면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와서 온종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돌면서, 구인광고정보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는 하필이면 지금 나오려는 아이가 원망스럽고, 그런 원망은 앞으로 살림을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배어 있는 까닭이다. 실직만 하지 않았다면 기쁘고 반갑게 맞이해야 할 둘째 아이의 존재가 버거운 것이다.

 

그렇게 매일 순환되는 지하철을 타고 몇 바퀴씩 돌다가 우연히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의 분유 값을 위해 구걸하는 여자(박현영)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처지도 어렵지만, 동병상련의 감정이 든 그 남자는 천 원짜리 하나를 무겁게 주머니에서 꺼내어주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또 만나자 괜한 분풀이를 그 여자에게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마치 동냥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자조감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에 대한 안타까움을 체감하게 된다.

 

남자가 겪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섬뜩한 환상으로 보일 때 삶이 참으로 처절하게 다가오고, "자식을 낳아서 책임지지 못할 거면 차라리 먹어버리는 게 낫다."는 농담 아닌 농담은, 우리 사회의 참혹하고 서글픈 현실을 향한 날 선 비판으로 가슴을 찌른다.

 

 

 

두 번째 영화, '별 모양의 얼룩'은 1년 전에 화재 사고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를 잃은 엄마(김지영)와 아빠(최무성)의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 수련관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19명의 유치원생과 교사 4명이 숨진 끔찍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죽은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추모일에 사건 현장에 다녀오다가, 사건이 발생하던 밤에 유치원생 하나를 목격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슬픔이다.

 

그중에서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튼 바람을 가진 엄마의 모습에 주목한다. 아이가 자던 침대에 누워 냄새를 맡아보려고 하는 모습, 아이가 걸었을지도 모르는 숲 속의 길을 눈물로 걷는 모습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안타까운 모성애와 더불어, 차마 마음에서는 떠나보내지 못하는 가슴 아픈 슬픔이 서려 있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손과 걸음걸이로 그 안타까움과 슬픔을 연기한 김지영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세 번째 영화인 'E.D.571'은 2030년이라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연애도 마다하며 직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한 여자(선우선)는 대학생 시절에 등록금으로 생긴 빚과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판 적이 있는데, 외국 출장을 앞둔 어느 날 밤에 자신 앞에 그 난자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열두 살짜리 아이(지우)가 나타난다.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이혼함에 따라 고아원에 가게 생겼으니 자신의 법적 후견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만일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지난날에 있던 난자 매매에 대해 폭로하겠다면서 그 여자를 협박한다. 부탁을 거절하자 어른들은 다 똑같다면서 왜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느냐면서 오열한다. 영화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스스로 세상에 태어나는 걸 결정하는 사람은 없고, 그렇기에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네 번째 영화 '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는 곧 출산을 앞둔 직원에게 가해진 회사 측의 권고사직 압력을 둘러싼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적인 형식을 가미한 개성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독특한 외형적인 면과 더불어 내용 면에서도 직장인의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의 문제로부터 빚어지는 현실적인 모순을 매우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같은 처지의 직원들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연대하다가 지리멸렬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씁쓸함을 안겨준다.

 

네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의 우리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활을 위해서 고된 노동과 회사 측의 굴욕적인 태도를 감내해야 하고, 육아를 위해 바쁘게 지내는 엄마는 아이의 빨래도 제때 하지 못해 마음에 눈물로 얼룩이 지고, 부모의 불화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원망하며, 일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겹기만 한 그들의 모습.

 

'가족시네마'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인 네 편의 영화 모두 저마다의 구성과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이 꽤 섬세하고 신랄하다. 서럽고, 서글프며, 슬프고, 안타까운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갖는 의미가 있다. 다만, 어디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할지 영화 안에서는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영화 바깥에서 바꿀 수 있는 틈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Modern Family

감독: 신수원, 홍지영, 이수연, 김성호

 

* '순환선'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단편 영화의 본상인 '카날플뤼상'을 받았다.

 

** 배우 김지영은 올해 출연한 세 편의 영화에서 모두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 그중에서도 딸을 둔 엄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세 편에서 보여준 연기가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올해의 엄마 연기상'이라도 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