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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애프터: 삶과 죽음에 관한 따뜻한 손길의 울림

evol 2011. 4. 7. 22:31

 

 

프랑스의 유명한 아나운서인 마리(세실 드 프랑스, Cecile De France)는 인도네시아에서 여행을 하다가 쓰나미가 발생한 바닷물에 빠져서 죽음의 문턱을 체험하게 된 후에 그 충격적인 경험과 기묘한 기억에 휩싸인다. 미국 샌 프란시스코 항만의 노동자인 조지(맷 데이먼, Matt Damon)는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영매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자 그 능력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 숨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영국 런던에 사는 쌍둥이 제이콥(프랭키 맥라렌, Frankie McLaren)은 형 제이슨(조지 맥라렌, George McLaren)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에 그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절망감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로 살아간다.

 

영화는 그렇게 세 사람의 삶을 차례로 혹은 교차하며 진행된다. 마리는 결국 변심한 애인을 떠나게 되고 '히어애프터(Hereafter)'라는 사후세계의 경험담을 담은 책을 출간하게 된다. 조지는 연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지 못한 자기의 삶이 싫어서 능력을 사용하길 거부하며, 일상을 접어둔 채로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고향인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제이콥은 쌍둥이 형을 잃은데다가 마약 중독자인 엄마와도 헤어지게 되면서 낯선 가정에 위탁되지만, 죽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광고를 찾아다니면서 형 제이슨과의 만남을 갈망하며 방황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마치 재난영화로 오해할 만큼 쓰나미의 현장을 생생히 묘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이라는 곳은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맞닥뜨리게 되는 재난의 현장 같은 공간이며, 그 공간에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뒤엉키며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는 곳이라는 설정이었을까. 어디 자연의 불가해한 힘이 일으키는 재난만 있나,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테러와 전쟁이 횡행하며 죽음을 초래하기도 한다.

 

세 사람의 각각 다른 삶과 다른 공간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그리 예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구조는 아니다. 각자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게 경험하게 되는 트라우마가 하나의 공간과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는 과정은 굉장한 긴장감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삶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해나가는지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한다. 살아 있는 사람 혹은 남겨진 사람과 죽은 사람 또는 떠나간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진지한 사유를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는 줄곧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과 교훈을 영화에 담아 왔다. 거기에는 삶에 관한 깨달음과 가르침이 우리의 눈높이에 놓여져 있고, 딱딱한 설교보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삶의 종착역이라고 일컫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과 맞닿은 경험을 한 세 사람을 통해 죽음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설적이게도 살아가는 사람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절망에 휩싸인 채로 좌절하고 주저앉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죽은 자들은 이제 그 고통의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과 용기를 말한다. 그리고 산 자들은 서로가 가진 고통을 서로를 통해 덜게 되고 동시에 희망을 나누며 비로소 새로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여든을 넘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충분히 말할만한 위치에서 따뜻한 손길처럼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삶과 죽음, 사후의 세계를 말한다고 해서 영화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혼이 있고 없고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죽음을 통해서 어떤 태도로 상황을 극복하고 또한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삶이 곧 죽음과 절단된 다른 측면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있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의 질감이 아주 촘촘하진 않다. 감독의 주관적인 개입이 느껴지는 연출은 간간이 등장인물들에 대한 공감의 거리를 다소 멀게 느껴지게 하는 때도 있다. 삶의 막다른 지점인 죽음 그 너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삶, 그래야겠지!

 

 

 

Hereafter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 영화를 본 시점이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 탓 때문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쓰나미의 현장이 전해주는 광경은 매우 현실감 있게 충격적이었다. 사는 동안 요즘처럼 재난과 그로 인한 죽음이 가까이에 있는 것을 느끼는 때가 없다.

 

** 세실 드 프랑스는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영화의 처음에서는 그저 낯설다가 끝날 무렵에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답답해 보이던 단발의 파마머리 모양부터 다소 약해 보였던 사람이 보여주는 용기의 모습까지. 그런데 쓰나미의 현장에서 그 정도 충격과 공포를 경험했다면 그리 쉽게 기운 차리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 쌍둥이 형제로서 죽은 형의 모자를 빈 침대에 놓고 잠드는 장면, 명치 끝에 묵직하게 남았다. 어린 소년이 겪는 모든 정신적인 충격이 다 그렇겠지만, 가족을 잃는 슬픔만 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 불쌍하게 홀로 남겨진 소년을 위해 정부에서 애정과 책임을 가지고 일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그런 불쌍한 어린아이들에게 밥 좀 먹이고 공부 좀 시키자는 걸 반대하는 어른이 판치는 나라에서 산다는 게 참으로 화가 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