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존 레논(아론 존슨, Aaron Johnson)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며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담고 있다. 이모 미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Kristin Scott Thomas)와 이모부인 조지(데이비드 스렐펄, David Threlfall)와 살던 중에 이모부가 죽게 되고 그의 장례를 치르는 곳에서 엄마 줄리아(앤 마리 더프, Anne-Marie Duff)를 만나게 된다. 존 레논은 엄마로부터 로큰롤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밴조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음악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비틀스 결성 초창기의 구체적인 이야기나 뒷이야기 등보다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버려지고, 아빠가 떠나고, 그래서 이모와 이모부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던 아픔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잡혀 있다. 그것은 곧 어린 소년의 성장통을 담은 영화이자 전 세계가 모두 아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음악가의 시작에 관한 영화다. 즉,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논이 나온다고 해서 그들의 음악이 연이어 흐르는 그런 종류의 음악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엄마! 떠나지 마세요, 아빠! 돌아오세요.
......
Mother, you had me but I never had you.
I wanted you, you didn't want me.
So I, I just got to tell you.
Goodbye, Goodbye!"
이 영화를 음악영화로 정의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존 레논의 음악적 시작의 지점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결국 음악에 관한 영화인 것이기 때문에 음악영화로 부족하게 느낀다면 음악영화에 대한 개념을 매우 협소하게 가진 때문일 것이다. 시종일관 음악이 이야기에 따라 개입하고 흐르는 것만이 음악영화가 아니고, 한 음악가가 음악과 만나고 그 속에 녹아들어 가는 과정을 담은 것도 결국 음악영화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폴 매카트니(토마스 생스터, Thomas Sangster)로부터 기타의 코드를 배우는 장면이 그런 모습이다.
영화에 그려진 존 레논과 엄마 줄리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어라?' 하는 생각에 닿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연인과도 같고 그들의 나들이는 데이트의 형태이며 소파에서의 장면은 근친상간의 느낌까지 풍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그렇게 연출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철부지 같은 줄리아의 모습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존 레논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하지만, 설령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해서 그게 영화상에서 이질적으로까지 여겨지지는 않는 수준에서 마무리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들출 정도는 아니지만, 그 근저에는 엄마에 대한 지독한 갈망과 그리움과 원망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자기를 두고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하는 일을 겪은 사람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좀처럼 그 충격의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 혹은 아빠에 대해서 원망하는 만큼 받고 싶은 사랑이 마음속 깊이 깔려 있게 된다. 존 레논은 그러한 가족사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불신과 원망 또한 키워나갔을지도 모르는 것이고, 그러한 점이 비틀스 멤버 중에서도 유독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인 관심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비틀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존 레논이 음악을 하는 초창기에 어떻게 처음 밴드를 만들게 되는지와 폴 매카트니를 만나게 되는 과정, 조지 해리슨(샘 벨, Sam Bell)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리버풀(Liverpool) 출생의 존 레논이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모아서 만든 밴드 '쿼리 멘(The Quarry Men)'의 결성으로 시작되는 음악가로서의 여정, 거기에는 시시껄렁하고 반항적이며 사고뭉치였던 존 레논이 음악을 통해 어떻게 삶의 변화되는 모습을 갖게 되는가가 담겨 있으며 동시에 음악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의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차이콥스키를 듣는 이모 미미와 로큰롤을 즐기는 엄마 줄리아 두 사람 모두 존 레논에게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엘비스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스스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에 자양분이 된 두 여인. 둘 모두를 사랑했고, 둘 모두를 미워하기도 했던 좌충우돌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존 레논의 그때 그 시절. 이모로부터 엄마가 자신을 버린 사실을 들으며 깊은 분노와 좌절에 빠지지만 이내 미움을 걷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명의 엄마.
독일 함부르크로 떠나기 전에 '부모와 보호자' 중에 어느 곳에 서명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모의 말에 "둘 다"라고 말하던 것을 보면 존 레논이 이모 미미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면적으로 훌쩍 성숙한 존 레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존 레논에 관한 영화이긴 하지만, 비틀스의 다른 멤버들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의 등장이 그 점인데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좀 달라서 사실 여부를 찾아보니 역시 감독의 허구적인 설정이었다. 그러나 영화상으로 그렇게 해가 될 정도의 것은 아니다. 존 레논의 엄마 줄리아의 죽음 때문에 존은 친구고 뭐고 박치기하고 주먹을 날리지만 결국 폴과 존은 포옹하며 위로하고 화해한다. 아마도 감독은 그런 장면을 통해서 존과 폴의 친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영화는 줄리아의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죽음으로 결말에 이른다. 이제 소년 존 레논은 청년 존 레논으로 변모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에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고, 안식하지 못했던 존 레논은 엄마를 잃고 또한 스스로 엄마와 마찬가지인 이모 곁을 떠난다. 떠나야만 이뤄지는 삶이 있고, 머물러야만 완성되는 삶이 있겠지만 존 레논의 시작은 그렇게 상실과 이별로 이뤄졌다.
Nowhere Boy
감독: 샘 테일러 우드(Sam Taylor Wood)
* 이모 역할을 했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연기가 참 좋았다. 남편을 잃고도 슬픔을 의연하게 참아내던 모습, 가슴에 사랑을 품고도 조카를 잘 키우기 위한 마음으로 엄격하게 대하던 모습, 가족과 가정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며 제멋대로 사는 동생의 아이를 대신 맡아 키우고 끝내 동생마저 떠안던 모습. 그 과정의 심리 변화를 표정으로 그려내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나에게도 이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 폴 매카트니 역으로 나오는 토마스 생스터를 보면서 '어, 쟤를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바로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에서
샘으로 나왔던 그 아이였다. 아, 그 귀엽고 깜찍하던 아이는 사라지고 이제 스무 살이나 되었단다. 프로파일을 보니까 1990년생이다. -_-..
***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존 레논 역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가 존 레논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연기력이나 뭐 그런 것을 걸고넘어지는 건 아닌데, '우리의 전설' 존 레논의 외적 이미지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인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
**** 영화를 보고 나서 '마더(Mother)'라는 곡이 더 아프게 여겨졌다. 그전에는 무심코 들었는데 이제는 존 레논 유년의 아픔이 함께 느껴질 것 같다. 동시에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도 떠오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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