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인류의 역사, 그 인류의 인구수가 71억 명을 넘은 현재 시점에서 무중력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지구를 바라본 경험을 한 사람의 숫자는 그야말로 남극에 굴러다니는 눈 뭉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기압도 없으며, 숨 쉴 공기도 없는 고요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생명은 극단적인 영상과 영하의 기온 차를 견딜 우주복과 산소통, 그리고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이어진 줄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 우주 공간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게 된다면?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과거나 미래의 우주가 아닌 현재의 우주 공간, 그것도 지구에서 가늠도 할 수 없이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대기권 위의 상공을 무대로 삼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외계 생명을 찾거나 외계인과 전쟁을 치르는 지구인들이 아니라,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호를 타고 고장 난 허블 망원경의 수리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첫 우주 비행을 하는 의료 공학 박사인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Sandra Bullock)과 베테랑 우주 비행사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George Clooney)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에는 두 사람과 더불어 우주 공간 그 자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맡은 일을 하던 익스플로러호의 대원들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러시아가 자국의 스파이 위성을 파괴하기 위해서 미사일을 쏘았는데, 그 위성이 파괴된 잔해들이 대기권을 순환하기 시작하면서 익스플로러호가 있는 곳을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게 된 것이다. 익스플로러호는 그 파편에 의해 파괴되고, 다른 대원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라이언과 맷은 지구의 휴스턴 본부와의 연락마저 두절된 채로 우주 속에 버려진다. 끈 하나로 이어진 두 사람은 어떻게든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애를 쓴다.
영화의 이야기 구성은 별다르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출발부터 지금까지의 우주를 다룬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영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15분은 족히 넘고도 남는 첫 시퀀스를 이루는 롱 테이크 장면은 지구의 모습과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 공간을 널찍하게 담더니만, 라이언의 얼굴로 돌진해서 그의 헬멧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그 안에서 바깥 공간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움직이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극장 안을 우주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리고 관객을 그 자리로 훅 끌어들여 버린다. 더군다나 3D로 바라보는 그 장면은 마치 카메라를 우주로 들고 가서 그곳에서 직접 찍은 것처럼 놀랍고도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한다.
라이언과 맷은 함께 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지만, 끝끝내 라이언만이 홀로 남게 된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우주에 남겨진 라이언은 두렵고도 두려운 고독감과 고립감에 휩싸인 채로 발버둥을 쳐보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만나게 된 상황은 농담처럼 어이없는 허무한 절망을 안겨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절망감에 의욕을 잃게 된다. 살아보겠다고 버둥거리다가 실낱같은 희망에 도달하지만, 또다시 좌절의 수렁에 빠지자 삶의 끈을 놓아 버리게 된다.
팽팽히 당겨진 줄 이쪽과 저쪽에는 삶과 죽음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마치 그렇게 끈 하나를 놓느냐 움켜쥐느냐의 선택을 일생 동안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고요함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것도 살아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 그 고요함 속에 홀로 던져졌을 때 느껴지는 건, 우주 공간에 홀로 버려진 라이언의 처지처럼 한없이 허탈하고 막막한 두려움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가장 극심한 공포감이 느껴지는 때는 무시무시한 파편의 습격이나 우주선과 우주정거장과의 충돌이 아니라, 넓이와 깊이를 알 수도 없는 우주 공간 그 자체의 본질처럼 소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멈춘듯한 장면의 시간이다.
이 영화는 인류가 아직 극히 일부분밖에 알지 못하는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겪는 조난 상황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극대화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영화를 보는 관객을 우주 공간으로 함께 보내버리는 듯한 신비롭고 진기한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영화의 공간과 그 공간에서 더불어 체험하게 한다. 물론 그 공포감은 기묘한 느낌의 즐거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인간과 우주를 다룬 체험적 영화인 '그래비티', 여기에서 우주는 미지의 공간이 주는 신비로움과 더불어 인간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두려움을 안겨주는 곳이다. 그 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넘어, 우주 공간으로부터 생명이 시작하고 또한 소멸함을 말하는 듯한 의미가 보이기도 한다. 마치 탯줄처럼 이어진 채로 우주를 떠돌던 라이언은 그 스스로 엄마로서 생명을 세상에 내보냈듯이, 그 또한 우주 공간으로부터 다시 지구로 새 생명을 얻는데, 그 과정이 꽤 상징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까마득한 우주 공간에서 바라본 지구, 그 아래의 땅에서 자신을 걱정하고 생각해줄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라고 자신에게 물었을 때,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라이언은 말도 통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로 위로와 힘을 얻었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다시 또다시 걸음마를 배우듯이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우주는 말한다고 믿고 싶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on)
* 3D 상영으로 영화를 봤는데, 아이맥스 3D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한 말이지만, 3D로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영화의 느낌을 절반도 경험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아마도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신기원을 여는 영화로 영화사에 남게 될 것 같다. 말마따나 정말 어마어마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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