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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괴물이 되기를 거부한 소년 화이의 처절한 싸움

evol 2013. 10. 23. 00:26

 

 

잔인하고 과감한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이른바 '낮도깨비'라 불리는 다섯 명의 남자들에게 유괴된 어린아이는 죽임을 당하는 대신에 그들의 손에 길러진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힌 채 으르렁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괴물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곤 하던 그 아이는 14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들을 '아버지'와 '아빠'로 부르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그의 이름은 화이(여진구), 교복을 입고 다니긴 해도 학교에 다니는 대신 자신의 '아빠들'로부터 총검술과 무술, 운전 등의 범죄의 도구가 되는 기술을 배우며 성장했다.

 

화이의 아빠들 중에는 화이의 미래를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는 진성(장현성)도 있지만,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 석태(김윤석)는 자신처럼 범죄자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저지른 자신들의 범죄 현장에 있던 맹인이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증인이 되려 하자, 석태는 화이의 뛰어난 저격 실력으로 살인을 명령하지만, 화이는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나타나 괴롭히던 괴물을 보게 되면서 임무에 실패하고 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석태는 재개발 구역에서 몇 해가 지나도록 홀로 버티는 임형택(이경영) 부부를 죽여달라는 제안을 받고 화이를 범죄 현장에 세운다. 석태의 강요를 견디다 못한 화이는 결국 두려움과 정확히 알 수 없는 분노감에 사로잡혀 탄창이 비도록 임형택의 가슴에 총탄을 퍼붓는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과 관련한 믿을 수 없는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인간 내면에 깃든 선과 악에 관한 원형적 철학과 그와 관련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누아르 장르 영화의 폭발적인 화법으로 다루고 있다. 소년 화이가 아빠들이라고 부르는 다섯 명의 남자 중에서도 '아버지'라고 부르며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하는 석태는 자신이 스스로 어린 시절 화이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곧 영화는 소년 석태가 자라나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 석태가 되어 화이에게도 괴물을 극복하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의! 이후에 스포일러가 있음!!)

 

아이가 자라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이 구축한 세상에 합류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 혹은 소년이 아니라 성인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 홀로 세상에 서야 하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지나는 과정이다. 영화에서는 그 과정에서 아주 단적으로 선과 악의 길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매질하듯이 혹독하게 묻는다. 악마적인 아버지 석태의 손에 길러져서 결국 똑같은 괴물이 되기 직전의 화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십수 년을 기다리며 자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존재인 선하디선한 친부를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런 화이에게 석태는 말한다. 괴물이 되어서 편하지 않으냐고, 괴물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영화 바깥의 세상에서 수많은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 거기에는 교훈과 지혜라는 명목하에 "썩어빠진 세상에 맞서지 마라! 불의를 보더라도 나서지 마라! 너 하나의 힘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등의 삶의 가르침이 있기도 하다. 거대한 괴물들이 세상 곳곳을 장악하고 그들의 논리와 그들의 욕망대로 세상을 이끌어가는데도 어떻게든 그들의 논리와 욕망을 따라 배워야만 일등을 할 수 있고, 일등 기업에 취직할 수 있으며, 일등 신부와 신랑과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가르침 말이다.

 

 

 

화이는 다섯 명의 아빠들이 가르친 대로 순응하고 복종하며 살았다면 욕망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화이가 폭력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수많은 화이들은 권력과 금력의 강고한 지배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뒤는커녕 옆조차 보지 않으며 가르치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영화 속의 화이는 자신을 기르고 가르친 '아빠들'을 차례로 죽이며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하나 그 괴물의 모습을 삼켜버리며 자신의 뱃속에서 소화(소멸)해 버린다.

 

무서운 아빠든, 자상한 아빠든 그 아빠가 집 바깥에서 괴물이 되어 악행을 저지른다면 과연 자식은 그 아빠를 '아빠니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화이는 그것에 정면으로 답한다. 아무리 나에게는 자상하고 상냥한 아빠라도 바깥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고, 강도질을 벌이고, 살인과 권력으로 제 욕망을 채우는 괴물이라면 그 존재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한 내용은 화이에게 가장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던 기태(조진웅)의 최후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슬프지만 그 또한 괴물임을 깨닫는 화이. 결국, 화이는 자신에게 돌아오라며 속삭이던 석태를 죽이고, 마침내 다섯 명의 괴물 아버지의 폭력적 고리 가장 꼭대기에 있던 전 회장(문성근)까지 제거한다.

 

 

 

일면 유약해보이면서도 흔들리는 눈빛 안에 두려움과 비탄과 분노를 모두 담아낸 여진구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신인 배우가 아닌가 싶다. 악마성의 화신인 듯한 모습을 이전에도 보여주었던 김윤석은 그야말로 광인의 연기를 펼친다. 서로 너무 다른 다섯 명의 아빠 캐릭터가 등장하고 감독의 하고 싶은 말과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많아서인지 동범 역의 김성균과 범수 역의 박해준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자신들의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크게 모자람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이경영과 문성근의 카리스마도 영화에 힘을 보탠다.

 

2003년 작품인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서 장준환 감독은 인류 사회를 '소돔과 고모라'처럼 단 한명의 의인도 없는 악으로 가득찬 곳으로 표현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지구를 지켜라!'에서 병구(신하균)에게 물파스와 이태리 타월을 쥐어 줬지만, 이 영화에서 화이에게는 슬픔과 분노의 눈물과 총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화이에게 '아빠들'의 세상에서 괴물로 살아가지 않는 길은 괴물의 형상을 하고 악마처럼 군림하던 그들과 철저히 절연하는 것임을 비감스럽게 말한다.

 

 

 

감독: 장준환

 

*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화이의 희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쿠키 영상(Credit Cookie)이 있다. 그런데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중에 그 영상을 본 것은 나와 동행인 단 두 명이었다는 사실. 그러게 평소에 좀 엔딩 크레딧 끝나고 일어서지 뭐 그렇게 바쁘다고 영화의 여운을 담을 수 있는 그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그래. 으이그! 못 본 사람들 안타까워서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