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공연을 하며 명성을 쌓아온 현악 4중주단 '푸가'의 네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25년이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함께했음을 자축하고 다음 공연을 위해서 연습을 하던 도중, 단원 가운데 가장 나이도 많고 스승의 역할을 하는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월켄, Christopher Walken)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게 되면서, 단원 모두가 당황을 감추지 못한다. 피터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은퇴 의사를 밝히고 다른 첼리스트를 구하자고 말하는데, 제2 바이올린 연주자인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Philip Seymour Hoffman)는 새로운 첼리스트와의 조화를 염려함과 동시에 자신은 더 이상 제2 바이올린 연주만 하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제1 바이올린 주자를 맡는 대니얼(마크 아이반니, Mark Ivanir)은 물론이고 로버트의 아내인 비올리스트 줄리엣(캐서린 키너, Catherine Keener)도 로버트의 발언에 실망을 표하고, 로버트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으며 대니얼에 동조하는 줄리엣에게 몹시 화가 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줄리엣과 헤어진 로버트는 결국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그날 밤을 보낸다. 로버트의 외도를 눈치챈 줄리엣은 크게 실망해서 결별을 선언하는 와중에, 또한 대니얼이 딸 알렉스(이모젠 푸츠, Imogen Poots)와 잠자리를 한 사실을 연습 도중에 따지게 되고, 이에 격분한 로버트가 대니얼에게 주먹을 날린다. 단원들은 개인의 삶과 팀 모두의 위기에 봉착한다.
영화는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연주가들이 공연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과 끝을 마무리 짓지만, 영화에 담긴 내용은 그들의 삶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각자 다루는 악기도 다르고, 연주하는 스타일도 다른 그들은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동료이자 경쟁자의 모습으로 맺어져 있다. 또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목마른 자식의 고민, 번민 속에 빠지게 되는 욕망, 일에만 몰두하다가 황량해진 중년의 모습, 그리고 병들어 늙어가는 노년의 서글픔 등이 시종일관 흐르는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 영화다.
푸가 4중주단이 연주하는 곡은 쉴 틈 없이 긴 시간 동안 연주해야 하는 고난도의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이다. 그 곡과 관련해서 피터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끊이지 않고 연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악기 간의 조화가 흐트러지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 닥치게 되면 연주를 그만해야 하는지 아니면 음률이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맞춰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인지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과 인생은 그렇게 조화를 이뤄나가기 위해서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그 외에도 영화에는 되새겨볼 만한 이야기가 더 있다. 피터는 스페인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의 만남에서 가진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데, 비록 실력이 좀 모자라고 실수를 하더라도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에 관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또한, 줄리엣이 지하철을 탔을 때 열차 내에 붙은 시 구절을 어린 소녀가 읽는 대목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며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조용하지만, 무게감 있는 비판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영화는 섣불리 사람들의 어긋난 관계를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각자의 가슴에 품고 있던 고통과 상처, 질투와 분노 등의 감정을 서로에게 쏟아 놓는다. 마치 긴 시간 동안 연주하면서 견디다 못해 불협화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처럼, 등장인물들은 부딪히고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관계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켜내는 과정을 지나 다시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모습에서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전해진다.
피터의 마지막 공연에서 악보를 덮고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각자의 시선을 버리고, 서로가 내는 음에 조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보이는데, 그렇게 그들이 화해하고 다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감독: 야론 질버먼(Yaron Zilberman)
* 현악기 전공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악기 연주 연기가 참 훌륭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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