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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업: 잘못된 역사에 대한 프랑스의 반성

evol 2013. 5. 23. 01:13

 

 

지나간 역사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의 의미는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망각하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와 더불어, 미래에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라운드 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스 경찰이 나치 독일군에 동조해서 자국민인 유대인을 13,000명 이상 체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13,000여 명 중에 4,051명의 어린아이도 있었고, 모두를 포함해서 겨우 25명만이 생존한 끔찍한 사건이다.

 

1942년 7월 프랑스, 당시 유대인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나치 정권의 폭압적인 유대인 정책 때문에 왼쪽 가슴에 노란 별 배지를 달고 다녀야만 했고, 출입 제한 구역과 통행금지 시간 등의 통제를 받는 치욕스러운 대우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7월 16일 새벽 4시를 기점으로 해서, 미리 작성된 유대인의 주소로 대대적인 경찰력이 투입된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폭언과 폭행을 퍼부으며 유대인을 체포해서 마실 물과 마땅한 음식도 없고, 화장실 시설도 제대로 없는 경륜장에 몰아넣는다. 이 사건은 나치 독일 측과 비시 프랑스(Vichy France)로 불리는 괴뢰 정권의 합의로 자행된 만행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애초에 2만 4천여 명의 목록을 작성하고 체포해서 독일로 이동시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무려 1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을 파리 시민이 숨겨줘서 죽음을 모면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그 부분을 볼 수 있는데, 물론 그렇게 용기를 내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엄연히 프랑스의 국민인데 폭력에 의해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유대인을 바라보는 파리 시민의 눈길에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담겨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직접 그 학살의 잔혹상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대신 내일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과 나치 독일의 인종정화정책에 힘을 보탠 프랑스의 기만적인 행태를 대비시키며, 역사의 비극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는가에 관해서 정서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거대한 자전거 경기장을 가득 채운 유대인들의 모습과 그들 앞에 서 있는 프랑스 경찰의 모습은 프랑스 역사에 영원히 남을 수치스러운 오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경륜장에서 수용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프랑스인 간호사로서 유대인의 참상을 지켜보는 아네트(멜라니 로랑, Melanie Laurent)와 유일한 의사로서 사람들을 돌보는 다비드(장 르노, Jean Reno)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특히 유대인들의 처지에 깊은 감정적 개입을 하는 인물인 아네트는 프랑스인으로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끝내 수많은 유대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프랑스인의 지난 역사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비록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 단위로 지낼 수 있었기에 모든 고통과 불안을 견디던 유대인들은 결국 남자와 여자, 아이들로 분리되어 각각 죽음의 화장터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구성이 단조롭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비극적인 사건의 무게를 온전히 옮기기에는 다소 약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70년을 넘긴 과거에 대한 프랑스의 자성적 시각이 담겨있다는 점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동일한 시대에 나치 독일 못지않게 아시아 각국에서 만행을 저지를 일본과 사뭇 비교된다. 하긴 우리나라의 현재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La Rafle, The Round Up

감독: 로젤린 보쉬(Roselyne Bosch)

 

* 프랑스에서는 나치 독일에 부역한 사람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현재는 바로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현재는 물론 미래도 잘못된다는 뼈아픈 교훈이다.

 

** 프랑스는 종전 후에 이 사건을 한동안 인정하지 않다가 1995년에 시라크 대통령이 처음 인정해서 공론화했고, 2012년에 올랑드 대통령이 사건 발생 70주년을 맞아 이 사건을 프랑스의 국가 범죄로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해서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되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