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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념: 제주 곳곳에 밴 상처의 흔적을 잊지 말자는 애도

evol 2013. 4. 6. 20:49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주도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라는 말과 한라산, 유채꽃, 해녀, 돌하르방, 옥돔, 신혼여행 등의 이미지를 거쳐 최근에는 올레길과 강정 마을로 떠올려지는 곳이다. 어떤 특정한 곳과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을 '안다'고 말하기엔 참으로 표피적인 것들만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을 보게 된 사람의 시선은 종종 자신의 관심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사람은 그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 낸다.

 

영화의 제목 '비념'은 제주의 말로 작은 규모의 굿을 의미한다. 감독은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지인의 외할머니(강상희)를 만나게 되면서, 개인과 가족사를 넘어서 비극의 역사에 희생된 제주 4·3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당시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과 유가족의 인터뷰로 진행하면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슴 깊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 제주 4·3 사건으로부터 최근 강정 마을의 해군 기지 건설 문제까지 이어지는 제주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제주 4·3 사건이나 강정 해군 기지 사건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참혹한 사건을 겪으며 희생된 수많은 개인의 역사다. 감독의 생각이 개입된 해설도 없고, 일정한 목적을 위한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가슴 아픈 사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카메라는 제주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자연적 이미지를 덧입힌다. 어쩌면 사람들보다 제주 곳곳에 배인 아픔과 슬픔의 흔적을 더 많이 아는 사물들 마냥.

 

제주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 그 아래로 아직도 묻혀 있는 처연한 주검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제주도가 화려하고 즐거운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고통을 품고 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치유되지 못한 영령이 공존하는 거대한 무덤 같은 공간이라는 걸 말해준다. 지금도 누군가의 발걸음이 지나가는 그 자리에 누워 있을 자들의 영혼을 생각하면 그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작은 풀, 나무, 산자락, 그리고 어느 길가에 배어 있을 침묵의 통곡을 조용히 담는다.

 

 

 

 

 

영화에는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나오는 방안에 말없이 앉은 할머니의 모습을 비춘다.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뛰어난 곳이 되건 말건 그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영화는 그처럼 거시적인 역사관을 통해 제주를 말하지 않고, 개인사의 관점에서 제주를 담는다. 기록된 역사에는 상처 입고 스러져간 자들의 이야기보다 그들을 밟고 일어선 자들의 이야기가 남기에, 감독은 영화로라도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의 소임을 자처한다.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이 그저 가슴에 품고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또한 살아 있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애써 설명하려고 들지 않고, 우리의 눈에 보이는 제주의 모습을 배경으로 차분히 그린다. 6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차마 다 쏟아놓지 못하는 애달픈 한숨과 눈물 앞에, 영화는 나지막한 소리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애도를 표한다.

 

 

 

Jeju Prayer

감독: 임흥순

 

* 귤나무 사이로 보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담긴 포스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귤처럼 보이는 곳에 제주의 여러 지역이 표기되어 있다. ...... 내가 제주에 처음 발을 내딛던 그 공항부터, 곳곳에 서글픈 역사의 가려진 흔적들이 놓여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