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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 참으로 황망하고 애절한 이별, 체제가 낳은 비극을 고발한다

evol 2013. 3. 12. 23:10

 

 

이른바 '귀국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으로 가서 25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일본으로 온 성호(이우라 아라타, 井浦新)는 고작 3개월간의 체류기간을 허락받은 채로 가족과 만나게 된다. 기억도 가물거리는 어린 나이에 헤어졌지만, 오빠를 다시 보게 된 리애(안도 사쿠라, 安藤 サクラ)는 웃는 얼굴로 반갑게 성호를 반기지만, '지상 낙원'이라는 곳에서 영양실조에 걸리고 뇌종양 치료를 받으러 온 성호의 상태에 은근히 화가 난다. 그래도 열여섯 살에 떠나 마흔한 살로 돌아온 오빠와의 상봉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한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연합회) 간부인 아버지(츠카야마 마사네, 津嘉山正種)는 짐짓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랜 시도 끝에 돌아온 아들에게 미안함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자신의 손으로 북한으로 보낸 그 심정이 오죽하랴 싶다. 우여곡절의 세월을 지나 집이 있는 동네 입구에 도착한 성호는 차를 세워달라고 해서 내린다. 그리고 25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길을 살피며 걸어간다. 마침내 시야에 집이 보이고, 차마 발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미야자키 요시코, 宮崎美子)가 보인다. 2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은 함께 축배를 든다. 그들의 웃음은 제각각 다른 생각의 층으로 보여서 한껏 밝게만 보이진 않는다.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인 이 영화는 1959년부터 20여 년간 일본 정부와 북한의 협정으로 조총련계 교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북송사업에 의해 강제로 북한으로 이송되어, 돌아오지도 못하고 헤어진 채로 살게 된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감독의 전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드라마의 형식을 통해서 미처 다하지 못한 감독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 감독의 세 오빠가 북송사업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오빠들을 대신한 역으로 성호라는 인물을 삼았고, 리애가 곧 감독 자신이며, 가상의 허구적 인물인 양 동지(양익준)가 북한에서 파견된 감시자로 설정되어 있다.

 

9만 4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북한으로 건너간 후, 다시 돌아오지도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생이별을 했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자신의 가족사를 영화화하는 감독의 태도는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영화 안에서 고스란히 보인다.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도 많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의 변화도 그리 잦지 않다. 인물과 인물이 한 공간에 있을 때 감지되는 분위기의 느낌과 인물 사이를 오가는 시선에 배어있는 느낌들을 묵묵히 담는다. 뭐라고 정확히 분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인물들 내면의 생각과 감정들이 차분한 시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장면 안에서 켜켜이 층을 이루며 쌓여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호는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다. 웃음도 옅고 눈물이 날 상황에도 덤덤하다. 그런 모습은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도 이어지고, 첫사랑을 만나는 시간에도 한결같다. 그런 성호의 모습은 북한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는지를 짐작하게 하는데, 일본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 사람의 존재로 미루어 생각하면, 왜 성호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하고 속박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정지당한 채 사는 성호, 그래서 동생에게 세상을 다니면서 많이 보고 경험하면서 하고 싶을 일을 하며 살라고 하는 말은 참으로 가슴 아픈 당부로 다가온다. 자신의 삶에 대한 체념과 동생의 삶에 대한 염려가 빚어내는 안타까움의 무게감이 참 야속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애초에 주어진 3개월을 채우지도 못하고 급작스레 며칠 만에 귀국 명령을 전달받은 성호는 그리 크게 놀라지도 않고 딱히 흔들리는 감정조차 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모습이 하도 기가 막혀서 영화를 보다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왜 이 가족은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음을, 아무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을 말한다.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북으로 보낸 아버지도, 심장에 멍이 들도록 속울음을 우는 어머니도 그저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은 인질처럼 잡혀 있는 아들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걸 아는 까닭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애는 감시원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며 항의한다. "당신도 싫고, 당신의 나라도 싫다!"고 부르짖는 리애에게 감시원은 그 나라에 자신도 살고 있고, 너의 오빠도 살고 있음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음을 싸늘한 태도로 말한다.

 

가족이 가족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국가란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인가? 가족이 가족의 자리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지 못하게 하는 이념과 체제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영화는 표면적으로 감시원의 존재를 통해서 북한을 비판하고 있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에 빗대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짧은 만남과 기약할 수 없는 긴 이별의 비극적 상황에 놓인 일가족의 아픔과 슬픔이다. 그 아픔과 슬픔 자체가 그들이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과 변하지 않을 앞으로의 시간에 깃든 습기를 눈동자에 가득 담은 듯이 보이는 성호의 모습,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체념으로 가득 찬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강고한 벽에 둘러싸인 채로 살아가는 자의 서글픈 삶을 보는 듯해서 정말이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우라 아라타의 그 눈빛과 표정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 감정을 잘 표현해낸다. 특히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의 그 형언하기 어려운 공허한 표정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참으로 가슴이 저렸다.

 

아무런 방법이 없음에 넋을 놓고 주저앉은 아버지와 저금통을 털어 감시원의 양복을 준비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후반부의 시간은 굉장히 고된 시간이었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차마 붙잡을 수도 없는 오빠를 쫓아가는 리애의 모습에 묻어있는 그 억울함과 분노와 애달픔에는 지난 25년간의 헤어진 시간과 또한 앞으로도 감당해야 할 이별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땅히 물고 늘어질 대상조차 없는 그들에게, 이 세상은 그 어디에도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 나라가 없다. 그들을 그렇게 갈라놓은 나라는 있으나 그들을 다시 합쳐놓을 나라는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영화는 묻는다.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감독: 양영희

 

*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입술로만 부르던 성호의 노래, 그마저 다 부르지도 못하고 다시 입을 닫던 그 장면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성호라는 존재가 주는 울림이 참 크게 다가온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1997년인데 그로부터 벌써 16년이 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