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허트 로커(The Hurt Locker)'에서 전쟁 영화의 참상을 숨 막히는 시한폭탄 같은 무게감으로 다뤘던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의 무대를 아랍으로 삼았다. 지난 작품에서도 그랬듯이 전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일상적 모습을 포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감독은, 공간이 주는 액션의 스펙터클과 그 공간을 채운 사람들 사이의 드라마를 조합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빗발치는 총격전이나 거대한 물량의 무기들이 투입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투 영화가 아니라, 전쟁이 빚어내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 행태를 처음 접하게 된 사람이 어느덧 반 인간애적 일상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그 과정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9.11 사건' 이후 10년이 넘도록 사건의 배후 조종 혐의를 받는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Jessica Chastain)는 유령처럼 신출귀몰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를 끈질기게 뒤쫓고 있다. 동료 요원들은 물론이고 상관조차 추적에 대한 의지를 버린 상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마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 때문에 그토록 결과가 요원한 일에 매달리는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부분 포기한 일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마야를 이끄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CIA에 지원한 마야의 삶은 그 시점으로부터 오로지 빈 라덴을 쫓는 것뿐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삶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이 하루하루를 지나며 끈질기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팽팽한 긴장감의 나날이었다. 마치 아무리 미끼를 놓고 기다려도 입질조차 없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호수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의 삶이다. 사건 관련자를 고문하는 장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던 마야는 이제 직접 취조에 가담하고 지휘할 만큼 변해있다.
마야의 변모를 보는 것은 그 스스로 가진 열정의 성분이 무엇인지 따져보게 하는 기회를 던져준다. 또한, 체포한 알 카에다 조직원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문 사실에 대한 부정이 교차하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을 어떤 위치에서 말하고자 하는지 엿보게 한다. 엄연히 있었던 사건 용의자나 군 포로에 대한 가학 행위를 '있을 수 없는 일'로 포장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얄팍한 거짓말인지 관객은 지켜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정치적 편향을 거의 느낄 수 없이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의 현장에서 두려움마저 느끼던 마야가 그런 일에 익숙해지는 과정, 바로 그것이 전장의 현장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일상을 버티는 사람이든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든간에 양쪽 모두 내면에 커다란 정신적 손상을 입는 후유증이 있다. 그것은 마치 조금씩 타들어가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듯이 삶을 변형시키거나 파괴시킬 수도 있다. 그런 형태가 어떤 이에게는 넌덜머리나는 염증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으로, 혹은 더욱 미친듯이 달려드는 것으로도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야에게서 철두철미한 애국심이나 국가관 따위는 없다. 그에게 그 일은 그저 일일 뿐이다. 그것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할 수도 없이 살아온 시간이 자신의 등 뒤로 까마득한 세월로 묻어 있기 때문이다. 테러를 방지하고 더 이상의 인명 손실을 막기 위한 영웅의 모습도 거기엔 없다. 오로지 그의 일상의 터전이 곧 그곳이고, 그곳에서의 삶이 곧 그의 일상인 것 뿐이다. 그런 마야의 모습과 주변 사람의 모습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그게 과연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인지 의심스럽기도 한 허무함이 묻어 있다.
영화의 제목 '제로 다크 서티'는 군사 용어로서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각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을 지칭하는 것은 2011년 5월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벌인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이다. 영화는 2시간 30분이 넘는 상영시간에서 2시간 가까이를 마야의 지루하고 고된 추격 과정에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 30분을 헬기에 탄 특수부대원들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하고 사살하는 과정으로 채운다. 실오라기 같은 단서로부터 마침내 지난한 탁상공론과 격론을 거쳐 작전을 마감하기까지에 이르는 그 과정은 마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건조하고 까끌거리는 느낌으로 그려진다. 전장의 극적인 감상 따위는 전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야말로 생생한 현장감이 주는 긴박감과 작전 과정의 섬세한 묘사가 주는 불안함과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캄캄한 밤하늘을 최대한의 소음을 감춘 채 날아가는 헬기가 출발해서, 실제 작전을 방불케하는 작전 과정에는 별다른 대사도 없이 대원들의 등 뒤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끔 연출되었다. 그 장면이 주는 느낌과 장면이 지나간 후의 생각에는 피아간의 구분에 의한 통쾌함이라든가 성취감 등과는 거리가 먼, 혼란스럽게 가라앉는 아득함만이 남았다. 아마도 마야 또한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그 작전이 얼마나 의미있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인지보다, 오로지 해냈다는 안도감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야의 여러 감정들, 그중에서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뿜어내는 분노의 의미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빈 라덴에 대한 작전이 마무리된 후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비행사에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10년의 세월을 달려오게 했던 추동력을 상실한 마야의 삶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게 될지, 그 허탈한 모습을 무엇으로 채울지 궁금하다.
실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그것도 결과가 이미 노출된 이야기에서 서스펜스를 잃지 않고 이야기를 가공하는 연출력이 참 뛰어남을 느끼게 한다. 가녀린 몸으로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던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고요함 속에 소음을 감추고 폭발하는 폭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도 무척 훌륭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작전은 거대하고 황량한 사막을 샅샅이 뒤지는 것과도 같은 시간을 살아온 마야의 삶과 닮았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마야의 침묵은 또 다른 목표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Zero Dark Thirty
감독: 캐스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 여성 감독이 만든 전쟁 관련 영화, 이제 더는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는 게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극도의 긴장감을 구성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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