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관련한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 역경을 딛고 승부를 겨루는 인간 승리가 주는 감동이다.
그리고 청춘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그것은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마침내 바로 서는 성장 이야기일 것이다.
이 영화의 얼개를 얼핏 보면 그런 두 가지 성분의 영화가 결합한 체조 선수 지망생의 성장통을 담은 내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청춘들의 버디 무비이자, 대만판 청춘 누아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깝고,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는 남성 친구들의 좌충우돌 청춘기가 담겨 있고, 불투명하고 흔들리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목적 의식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채로 부딪히게 되는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도시의 주변부 청년들의 우여곡절이 담겨 있는 199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한 회고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의 분위기는 묵직하다기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느낌으로 볼 수 있는 청춘 영화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어린 시절에 체조 선수가 꿈이었던 아쉰(펑위옌, 彭于晏)은 체조부 아이들이 연습을 하는 것을 몰래 지켜보다가 선생님에게 들키게 되고, 그런 아쉰을 선생님은 체조부에 합류시켜서 훈련을 시키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결국 체조부를 그만두고 만다.
어머니가 아쉰의 그런 바람을 반대한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아쉰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약점 때문이었다.
두 다리의 길이가 다른 탓에 점프 후에 이어지는 착지 동작에서 늘 불안하고 자주 다치는 모습을 어머니는 알고 있는 이유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체조 선수를 향한 꿈을 접게 된 아쉰은 그 뒤로 채소와 과일을 파는 일을 하며 소일하지만, 자신이 품었던 희망을 버려야 했던 아쉰에게 일상은 무료하고 지루한 반복이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없었다.
영화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약대를 힘차게 밟고 뛰어오르고 싶은 청년 아쉰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착지하게 되는가의 과정이 바로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아쉰이 둘도 없는 친구 피클(가우륜, 柯宇綸)과 함께 뜻하지 않은 사고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그들은 방황하는 청춘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봤던 몇몇의 홍콩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물론, '점프 아쉰'이 그 영화들을 대놓고 모방했다거나 표절했다는 차원에서의 이야기는 아니고, 이 영화만의 독특한 개성이나 새로움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구도와 전형적인 장면의 연출로 말미암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는 하나, 꽤 익숙한 내용과 장면으로 풀어낸 점은 우리나라와 홍콩, 대만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의 경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이 장점보다는 분명히 단점으로 작용하는 면이 크지 않나 여겨진다.
영화 초반부는 코믹하고 유쾌하게 펼쳐지다가 중반은 암울한 비극적 분위기로 전개되고, 후반에는 스포츠 드라마로서의 느낌으로 채색된 영화의 구조는 각각의 부분과 별개로 전체적인 맥락의 매끄러움이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영화에서 만나는 매력은 꺾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주인공 아쉰의 강인한 모습이다.
어느 교수의 책 제목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왜 청춘은 아프기만 해야 하는가?!
아프고 어려워도 마침내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이 진정한 청춘이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을 영화에서 아쉰은 보여준다.
점프해서 착지하기까지 많은 상처와 분노와 좌절과 슬픔이 있었지만, 아프다고 주저앉는 건 청춘이 아니지 않은가!
비단 청년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역경과 고난, 장애와 벽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을 뛰어넘고자 수차례 시도하기도 하고, 에둘러 가기도 하지만 결국 길고 먼 시선으로 그 과정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사는 동안 끊임없이 도약과 착지를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 가진 약점과 결함으로 뛰는 높이도 착지의 안정성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翻滾吧!阿信, Jump Ashin!
감독: 린유쉰(林育賢)
* 영화를 보다 보면 1990년대의 여러 상징물이 나온다.
삐삐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왜 대만에서는 음성사서함에 직접 목소리를 남겨서 연락을 하지 않고, 교환원을 통해서 읽어주게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참 궁금한 적이 많았다.
왜일까? 아! 궁금해!!
** '타이페이 스토리'에 출연했던 임진희(林辰唏)가 교환원 '599'로 잠깐 등장한다.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어도 일단 반갑긴 했는데, 아쉰과의 일화가 너무 뜨뜬미지근해서 아쉬웠다.
그런데 중화권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관성이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그쪽의 발음으로,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식 발음으로 부르는 것, 개선해야 하지 않나? -_-..
*** 뭐, 꼭 지적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아쉰이 머리를 깎던 모습, 너~무 '아저씨'의 원빈 장면과 흡사했다.
아주 조금, 아주 살짝 불편했다. -_-..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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