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조지 클루니, George Clooney)은 직접 무기를 제조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청부살인도 하는 킬러다.
스웨덴의 설원을 걷던 잭과 연인으로 보이는 여인, 눈밭에 수상해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면서 잭은 위험을 감지한다.
그리고 능숙하게 자기를 노리던 다른 킬러를 제거하고 아침까지만 해도 다정한 눈빛을 나누던 여인마저 냉정하게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도피의 길을 떠난다.
'아메리칸'은 눈동자의 움직임이 따라가기조차 힘든 속도감으로 전개되는 액션물도 아니고, 쉴 새 없이 오가는 총탄이 난무하는
화려한 활극도 아니며, 시종일관 촘촘하게 짜여진 구성에 의해 심장을 졸이게 하는 스릴러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관객이 객석에 앉고 불이 꺼지면서 영화가 시작되면 바람이 몰아치듯 달려가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슬로우 푸드(Slow Food)와 비슷한 의미라면 느린 박자의 액션물 성격을 지녔다고 할까?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액션 장르 영화에 익숙하고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좀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잭은 초반 도입부에서부터 어떤 성격과 성질의 인물인지 묘사된다.
따뜻한 온정을 느끼던 연인마저 자기의 목숨이 달린 위험 앞에서는 가차없이 살해하는 냉혈한이지만, 그 사건은 어디까지나
킬러라는 캐릭터의 보편적 본성일 수 있다. 자기의 정체가 노출된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외롭고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이다.
영화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킬러의 액션과 외적인 모습보다는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의 삶에 주목하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잭의 삶을 묘사하고 인생관과 가치관을 그려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쓸쓸하고 외로운 킬러 잭을 일상을 보며 아주 잠깐잠깐 그의 일상과 나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공감대를 보기도 한다.
새로울 것 없고 잔잔하며 무덤덤한 일상, 그런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운동을 하고 무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며 매춘부에게 성욕을
해소하기도 하는 어찌 보면 측은하고 별 볼 일 없는 삶이다.
그런 그에게 사랑의 나비가 날아든다.
그저 손님과 매춘부로 만나던 클라라(비올란테 플라치도, Violante Placido)가 잭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진행될지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카메라는 이탈리아의 산과 들을 종종 조감도처럼 그려내며 잭의 홀로인 모습과 적절히 섞어 놓는다.
그리 숨차지 않게 전개되는 서스펜스는 잭을 뒤쫓는 킬러, 그리고 감정을 나누는 클라라와의 장면에 잘 번져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킬러의 숙명적인 피곤함과 허탈함 등이 배어 있다.
'아메리칸'은 총알과 격투보다 그러한 킬러의 일상에 담겨 있는 감정과 생각에 주목한 영화다.
그는 잭 혹은 에드워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지만 그건 그의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저 '아메리칸'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영화상에서는 더 많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놓여져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 되기도 한다.
같은 이탈리안도 아닌 아메리칸이 마을에 새로 왔다면 얼마나 눈에 띄는 주목을 끌겠는가.
도피처로는 오히려 대도시가 훨씬 안전할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스웨덴에서도 눈빛 교환을 하던 사람을 기꺼이 자기의 안전을 위해 죽이던 사람이 얼마나 됐다고 다시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있냐 말이지. 그렇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게 또 그렇지 않겠는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뭐 딱히 유별난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아니겠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힘겨웠던 적이 있으면서도 또한 그렇게 사람과 다시금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영화는 누구나 예상하던 그 방향의 결말로 치닫는다.
마지막 순간 잭이 함께하고자 했던 매춘부 클라라와의 재회.
그는 결국 그 지점을 목표로 삼았었을까?
어쨌거나 잭이 킬러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자기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의 삶이 반드시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삶이 어찌 됐든 잭은 꾸역꾸역 자기로부터 달아나는 삶의 끝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까지 도달한다.
The American
감독: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
* 영화의 등급이 '18세 미만 관람불가'다.
그 이유는 잔혹한 폭력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다.
배우의 나신이 나오는 에로틱한 장면 때문이다.
어라, 액션 영화가 그런 이유로 그런 등급을 받았단 말이지. 후훗..
**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지만 분위기는 오래전의 프랑스 첩보 영화 같은 느낌이다.
영화의 속도감도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더욱 그렇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클라라 역을 맡은 비올란테 플라치도가 무척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영화의 분위기처럼 현대적인 미모의 측면보다는 1970년대쯤의 배우가 주는 그런 청순미와 에로틱한 매력이 섞인?
조지 클루니는 특유의 능글맞은 매력의 웃음보다는 차갑고 쓸쓸하며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연기를 펼친다.
쉰 살의 배우가 주는 그런 매력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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