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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사람 사이, 서로의 색채에 닮아가려는 노력

evol 2013. 11. 20. 21:00

 

 

"달은 점점 작아지니까 괜찮아요."

 

나이만 먹었지 가슴 속엔 소년과 소녀 그대로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자마자 결혼을 약속한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이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두 사람은 딱히 고민과 갈등 따위는 있지도 않을 것처럼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젊은 부부다. 남편인 무코(무카이 오사무, 向井理)는 낮에는 요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밤엔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한편, 아내인 츠마(미야자키 아오이, 宮崎あおい)는 텃밭의 식물들은 물론이고 개, 염소 등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다.

 

무코는 그런 츠마를 마치 아빠처럼 혹은 오빠처럼 상냥하고 자상하게 대하지만, 사실 그의 가슴 속에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 깊이 팬 상처가 있다. 아내에게조차 한 번도 제대로 털어놓지 않은. 그는 밤이면 소설을 쓰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은 소설 말고도 은밀하게 자신과 츠마의 하루하루를 세세하게 기록하듯이 일기를 쓴다. 마치 어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상을 빠짐없이 보고하듯이 말이다.

 

 

 

"너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아. 늘 자기 얘기만 해."

 

어린 시절에 츠마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작은 심장 탓에 병을 앓았다. 병상에 있던 소녀 츠마는 노란빛을 내뿜는 보름달을 보면서 병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데, 그 순간에 노란 코끼리가 나타나서 츠마를 등에 태우고 아프리카까지 간다. 소녀의 상상인지, 아니면 허약해진 탓에 환영을 본 것인지 모르지만, 츠마는 자신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코끼리와 동병상련의 위로를 나눈다. 아마도 츠마는 그 뒤로부터 사람들보다는 식물이나 동물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의 일상에는 막상 서로 간의 대화 통로는 좀 막혀 있었다. 그건 서로가 가진 상처와 관련한 비밀 때문이다. 무코는 비밀스러운 일기를 계속 써왔고, 츠마는 그 일기의 존재를 알고 계속 읽어왔으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발신인이 누구인지 쓰여 있지도 않은 편지가 무코에게 도착하고, 츠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때로부터 무코와 츠마 부부의 사이에는 금이 가고, 도쿄로 떠난 무코를 기다리는 츠마의 눈물 어린 시간이 시작된다.

 

 

 

"기적이란 바로 일상에 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사람에게 오늘을 매일 말하는 무코는 그동안 자기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 츠마에게 마음 한편에 소외감과 외로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영화는 부부의 관계, 인간의 성숙, 그 안에 있는 상처 등에 관한 이야기이자, 평범한 일상에 깃든 행복이란 회색 코끼리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노란색을 벗어야 하는 코끼리처럼, 각자 다른 색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색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말하지 않는 비밀이 영원할 수 없듯이, 말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도 참 미련하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처럼 과거는 그렇게 흘려보내는 거라고, 제아무리 수도꼭지를 잠가도 그 안의 물은 언젠가 반드시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츠마의 '슬픈 구타'는 무코의 손에서 피를 흘리게 했지만, 막혀 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무코의 깨달음을 불러온 가슴 아픈 통과의례다.

 

츠마와 무코의 이야기를 위해 배치된 노부부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조로운 구성에 재미를 더하는 역할이긴 한데, 좀 더 정제되고 간결한 등장이었으면 좋았겠다. 130분의 상영시간을 잔잔한 진행으로 느낄 수도, 다소 지루하고 더디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에겐 무지개보다 더 다채로운 빛깔이 저마다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지닌 색에 닮아가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영화에 담겨 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일상의 기적, 평안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きいろいゾウ

감독: 히로키 류이치(廣木隆一)

 

* 식탁에서 마주하는 츠마와 무코의 장면이 보일 때마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무척 맛있게 보였다. 따뜻한 밥상을 상대에게 차려주고, 그 음식을 함께 맛있게 먹어주는 소소한 일상이 참 예쁘고 행복해 보였다. 아, 배고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