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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킹덤: 우리가 사는 세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공간

evol 2012. 8. 10. 22:10

 

 

때때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약육강식의 규칙이 적용되는 동물의 세계와 비교하기도 한다. 또한, '짐승 같은'이라는 표현을 빌려 악인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에는 동물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일보다 더욱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는 '짐승 같은'을 넘어 '짐승만도 못한' 모습을 발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영화는 열일곱 살의 소년 조쉬 'J' 코디(제임스 프레체빌, James Frecheville)가 약물 과다로 엄마를 잃게 되면서, 외할머니 제이닌 '스머프(Smurf)' 코디(잭키 위버, Jacki Weaver)와 외삼촌들이 사는 멜버른(Melbourne)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조쉬는 엄마가 외가 쪽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저 외가의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스머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할머니부터 앤드류 '팝(Pope)' 코디(벤 멘델슨, Ben Mendelsohn), 크레이그 코디(설리반 스태플턴, Sullivan Stapleton), 대런 코디(루크 포드, Luke Ford)와 배리 '바즈(Baz) 브라운(조엘 에저튼, Joel Edgerton)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총기로 무장한 채 은행강도 짓을 서슴지 않고, 일상적으로 마약을 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며 살아가는 한마디로 범죄 가족이었다. 웃으며 반겨주는 할머니지만, 자식들을 범죄자로 키웠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에 조쉬는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이 저지른 무장강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용의자 선상에 오른 그들을 24시간 감시하던 경찰로부터 배리가 총으로 피격당해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에 격분한 팝과 크레이그, 대런은 복수할 것을 계획하게 된다. 그 계획 중에 자동차를 훔쳐오는 일을 지시받은 조쉬는 그저 시키는 대로 자동차를 훔치는 일을 하게 되고, 그들은 그 자동차를 미끼로 삼아 경찰을 유인하고 마침내 두 명의 경찰을 총으로 쏴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경찰은 코디 집안의 짓임을 직감하고 그들을 체포하고 거기에는 조디도 예외일 수 없었다. 조쉬를 취조하던 형사 네이선 렉키(가이 피어스, Guy Pearce)는 조쉬를 통해서 코디 형제들의 범행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고, 또한 어쩔 수 없이 코디 형제들에게 악용당하며 침묵을 강요당하는 미성년자 조쉬를 구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러던 중에 도망 중이던 크레이그마저 경찰의 총격으로 죽게 되자, 제이닌 스머프는 더 이상 자기의 아들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부패한 경찰을 이용해서 조쉬의 목숨을 담보로까지 삼아 아들들을 구하려고 획책한다.

 

조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증거 인멸 차원에서 마침내 자신의 여자친구마저 팝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 누구도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경찰과 범죄자, 살인과 복수 등의 요소를 품은 범죄 장르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역동적인 장면이 주는 오락성보다 인물의 심리 변화,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해봄 직한 문제를 던지며 다소 느릿한 속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동물의 왕국'이라는 것은 코디 집안으로 표현된 범죄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일 게다. 누구나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동물의 세계의 먹이 사슬의 체계처럼 그 안을 지배하는 법칙에 의해 살게 된다는 것일까? 엄마가 죽은 상황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철도 없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의 길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한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길들고 반응하며 변화하게 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기 삶의 환경에 의해 인간은 기본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들들을 범죄자로 키운 어머니가 있는 집안에서 범죄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 세계를 빠져나오는 길뿐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집안을 떠나서 홀로 세상에 나가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아마도 조쉬의 엄마는 그렇게 그 세계를 나왔지만, 결국 외로움이나 힘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약물 중독자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논리를 깨닫게 된 조쉬는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은 가족 내에 흐르는 먹이 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조쉬의 변화된 모습은 느릿한 속도로 인물들의 표정을 담으며, 극적인 효과의 기술이나 편집의 변화가 거의 없이 진행되던 영화에 아주 강력한 한 방의 힘을 터뜨리며 영화의 결말을 장식한다.

 

이전에 알고 있던 멜버른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삭막한 살풍경의 도시로서의 멜버른을 무대로 섬뜩하고 씁쓸한 이야기를, 아주 침착하고 차분한 어조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감독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동물의 세계를 관통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판과 흡사한, 아니 이미 그것을 뛰어넘은 곳이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조쉬처럼 알게 모르게 변모해가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져준다.

  

 

 

 

Animal Kingdom

감독: 데이비드 미코드(David Michod)

 

* 호주의 멜버른은 여타의 도시와는 달리 범죄자들이 신문을 크게 장식하고 대서특필되며, 저녁 뉴스 시간에 법정에 선 모습이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리얼리티 쇼'의 또 다른 스타들로 다뤄진다고 한다. 감독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기 싫었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 호주 영화임을, 또한 멜버른이 무대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화면에 종종 등장한다. VB 맥주라든가, 집 뒤편의 긴 마당, 시내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빅토리아 호텔(Victoria Hotel) 등을 볼 수 있다.

 

*** 웃음 뒤에 냉정한 독기가 느껴지는 살벌한 할머니 역할을 한 재키 위버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세상에는 온화하고 따뜻한 가슴의 어머니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